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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종말, 그 후

2026.09.24

2020년 코로나19 이후 컴퓨터공학과의 인기는 빠르게 높아졌다.

개발자는 부족했고 기업들은 높은 연봉을 제시했다. 공대에서도 컴퓨터공학과 입결이 가장 먼저 치고 올라왔다. 코딩을 배우면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도 강했다.

불과 몇 년 만에 분위기가 달라졌다.

AI가 코드를 작성하고 오류를 찾는다. 한 명의 개발자가 AI를 이용해 과거 여러 명이 하던 일을 처리한다. 기업들은 예전처럼 많은 신입 개발자를 뽑지 않는다.

최근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김상배 MIT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면 걱정이 없었는데, 불과 1년 반 사이에 직업을 못 가지게 됐다.”

얼마 전까지 높은 연봉과 안정적인 취업의 상징이었던 전공이 가장 먼저 AI의 영향을 받고 있다.

관련 영상: 유 퀴즈 온 더 블럭 360회 ― MIT 김상배 교수

기술의 변화가 대학에 입학해 졸업하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빠르다.

AI와 로봇 사이에서 노동의 미래를 생각하는 코타

직업은 남아도 사람은 줄어든다

AI가 내일 모든 사무직을 없애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 사람이 AI Agent를 이용해 예전 세 명이 하던 일을 처리한다면, 기업은 세 명을 계속 고용할 이유가 줄어든다.

대기업은 신규 채용을 줄이고 조직을 통합한다. 기존 인력을 중요도가 낮은 부서로 보내거나 희망퇴직을 받을 수도 있다.

소기업의 변화는 더 빠를 수 있다. 회계, 마케팅, 자료 조사, 고객 응대, 문서 작성처럼 여러 사람이 나눠 하던 업무를 소수의 핵심 인력과 AI가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전 세계 노동자 네 명 중 한 명이 생성형 AI에 어느 정도 노출된 직업에 종사한다고 분석했다. 사무직의 노출도가 가장 높았다. 다만 직업 전체가 바로 사라지기보다, 사람이 맡는 업무가 달라질 가능성을 더 크게 봤다.

그렇다고 현재 인원까지 그대로 유지된다는 뜻은 아니다.

직업의 이름은 남아도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수는 줄어들 수 있다.

적은 인원이 AI와 함께 더 많은 사무 업무를 처리하는 모습

사무직을 피해 기술직으로 가면 안전할까

이미 사무직을 그만두고 용접이나 도배처럼 몸을 쓰는 기술을 배우겠다는 사람이 늘고 있다.

지금은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건설 현장은 공장처럼 정리돼 있지 않다. 좁은 공간을 이동하고, 매번 다른 구조를 파악하고,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도 대응해야 한다. 현재의 로봇에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영구적인 안전지대는 아닐 수 있다.

산업용 용접은 이미 상당 부분 자동화됐다. 휴머노이드가 상용화되고 이동 능력과 손의 정밀도가 좋아지면, 로봇이 일하는 공간은 공장 밖으로 넓어진다.

로봇은 무거운 장비를 들어도 지치지 않는다. 분진과 유독가스가 있는 공간에서도 일할 수 있다. 한 대가 익힌 기술을 다른 로봇에 복제할 수도 있다.

사무직을 AI가 대신한다면, 육체노동은 AI가 들어간 로봇이 대신한다.

몸을 쓰는 일은 자동화되지 않는 일이 아니라, 자동화가 늦게 도착하는 일일 수 있다.

투자 분석도 하나의 사무직이다

투자 역시 많은 부분이 분석 노동이다.

재무제표를 읽는다. 뉴스와 공시를 정리한다. 산업의 성장률을 비교한다. 차트 패턴을 찾고 종목을 스크리닝한다. 새로운 전략이 떠오르면 과거 데이터로 백테스트한다.

이 일들은 AI가 잘한다.

AI는 수천 개 기업을 동시에 분석할 수 있다. 새로운 공시가 나오면 기존 투자 논리가 바뀌었는지 바로 확인한다. 과거 데이터에서 반복되는 패턴을 찾아 전략으로 만들고 직접 주문까지 실행할 수 있다.

모두가 비슷한 AI를 사용하게 되면 단순한 정보 우위는 빠르게 사라진다. 좋은 실적도, 새로운 뉴스도, 반복되는 차트 패턴도 수많은 AI가 동시에 발견하기 때문이다.

특히 과거 데이터를 분석하고 패턴을 찾는 트레이딩 기술은 컴퓨터가 사람보다 잘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트레이딩은 계속 유효할까?

나도 아직 답을 모르겠다.

인간의 공포와 탐욕, 기관의 자금 이동이 남아 있는 한 추세와 과잉 반응도 계속 나타날 수 있다. 다만 패턴을 먼저 발견하고 빠르게 주문하는 기술 자체는 점점 평준화될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자기 관점이 더 중요해질 수 있다

AI 시대에는 장기 가치투자의 일부가 상대적으로 더 오래 살아남을 수도 있다.

단순히 PER이 낮은 기업을 찾는 방식은 아니다. 숫자를 비교하고 적정가치를 계산하는 일도 AI가 더 빠르게 한다.

남는 것은 관점이다.

어떤 산업이 앞으로 커질 것인지, 지금 시장이 놓치고 있는 변화가 무엇인지, 경영진이 자본을 제대로 배분하는지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시장이 내 생각과 다르게 움직이는 동안에도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AI는 여러 미래를 제시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미래를 더 믿을 것인지, 얼마나 기다릴 것인지, 어느 지점에서 틀렸다고 인정할 것인지는 투자자마다 다르다.

정보가 평준화될수록 자기 관점과 시간축이 차이를 만든다.

회사에 다녀도 집을 못 샀는데, 이제 회사도 다닐 수 없다면

지금 20·30세대에서는 회사에 다녀도 서울 아파트 한 채를 사기 어렵다는 울분이 크다.

월급을 모으는 속도보다 집과 주식 같은 주요 자산의 가격이 오르는 속도가 빨랐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해도 먼저 자산을 가진 사람을 따라잡기 어렵다는 박탈감이 쌓였다.

그런데 앞으로는 그 회사에 계속 다니는 일조차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

노동소득은 이미 자산가격을 따라가기 어려운데, AI는 안정적인 일자리의 수까지 줄일 수 있다. 자산을 가진 사람은 AI가 높인 생산성에 주주로 참여한다. 자산이 없는 사람은 투자할 원금을 만드는 것부터 어려워진다.

노동소득과 자산가격 사이의 격차를 살펴보는 코타

구조는 점점 벌어진다.

AI 시대의 격차는 연봉의 차이보다 소유권의 차이에서 더 크게 벌어질 수 있다.

노동의 종말 이후에는 무엇이 남을까

지금까지 개인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었다.

나는 어떤 일을 해서 돈을 벌 것인가?

AI가 사무 노동을 맡고 로봇이 육체노동까지 맡기 시작하면 질문이 달라질 수 있다.

나는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가?

내 자본은 어디에 배분돼 있는가?

AI와 로봇이 생산성을 크게 높여도 그 성과가 모두에게 똑같이 돌아가지는 않는다.

AI를 만든 기업의 창업자와 주주, 로봇과 데이터센터를 소유한 기업, 브랜드와 플랫폼을 보유한 사람은 생산성 증가에 소유권으로 참여한다. 자신의 노동만 판매하는 사람은 자동화와 임금 경쟁을 직접 마주한다.

여기서 자본소득은 배당과 월세만을 뜻하지 않는다.

기업의 지분, 사업체, 브랜드, 저작권, 소프트웨어처럼 내가 일하지 않는 시간에도 가치가 쌓일 수 있는 자산을 모두 포함한다.

물론 누구나 충분한 투자 원금을 가진 것은 아니다. 투자만으로 노동의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 AI가 만든 부를 어떻게 나눌지는 제도와 정책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개인에게 자본소득은 부자가 되기 위한 선택을 넘어, 불안정해지는 노동소득을 보완하는 수단이 될 가능성이 크다.

노동만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시대가 끝날수록, 작게라도 생산 자산을 소유하는 일은 생존에 가까워진다.

결국 남는 것은 자본배분이다

AI가 좋은 투자 기회를 찾아줘도 결정할 것은 남는다.

AI는 최적의 비중을 계산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을 최적화할지는 사람이 정해야 한다.

최고 수익률이 중요한지, 최대낙폭을 줄이는 것이 중요한지, 안정적인 현금흐름이 필요한지에 따라 답은 달라진다.

AI의 분석을 이용해 자본을 배분하는 코타

나 역시 트레이딩을 하지만 트레이딩 기술만이 영원한 경쟁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과거 데이터에서 찾은 패턴은 AI가 더 빨리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전략 자체보다 그 위의 구조를 고민하게 된다.

트레이딩에는 얼마를 배분할지, 장기적으로 믿는 기업은 어떤 기준으로 보유할지, 현금은 얼마나 남길지 정해야 한다. 하나의 전략이 작동하지 않아도 전체 자산이 무너지지 않도록 설계해야 한다.

앞으로 투자자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분석을 직접 하는 능력이 아닐 수 있다.

AI의 분석을 검증하는 능력, 자신만의 관점을 만드는 능력, 그리고 그 관점에 얼마의 자본을 배분할지 결정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진다.

노동이 완전히 사라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노동의 희소성이 낮아지고 소유의 중요성이 커지는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노동의 종말 이후에도 자본은 남는다.

그리고 개인의 위치를 결정하는 것은 직업보다 무엇을 소유하고, 그 자본을 어디에 배분하는지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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